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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부드럽게 흔들리기로 했다

jwbrave11 2025. 4. 25. 08:14

 

진석의 마음은...

 

 

 회사라는 곳은 생각보다 전쟁터 같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음을 단단히 조이고 들어가야 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얼굴 뒤로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으며 하루를 버텼다.
그중에서도 진석은 유독 거칠었다. 말투도 날카롭고, 분위기도 찬바람 같았다. 사소한 실수에도 목소리를 높였고,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사람을 작게 만드는 말투로 답했다. 나는 자주 혼란스러웠다. 정말 내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어느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팀 전체 메일을 보내야 하는 중요한 업무가 있었는데, 나에게 그 역할이 맡겨졌다. 내용을 여러 번 검토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작성했다. 하지만 전송 직후, 진석에게서 한 줄의 메일이 날아왔다.

 

“이렇게 기본도 안 된 메일을 보낼 거면 하지 말지.”

 

그 한 문장이 목덜미를 뜨겁게 만들었다. 너무 창피했고, 모니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게 나의 전부는 아니야.”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자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점점 내가 나빠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퇴근길, 나는 일부러 멀리 돌아 집에 갔다. 바람이 부는 한강변 벤치에 앉아, 그냥 멍하니 강물만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지금 이 감정도, 조금만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며칠 후, 우연히 들은 이야기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진석이 사무실 옆 복도에서 진호 선배와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었다. 평소에 보기 드문 진지한 표정이었다.

“진석아.” 진호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요즘 많이 힘들지? 근데 있잖아, 강하게 날아오는 농구공을 받을 때 그냥 그대로 받으면 충격이 너무 커. 손목이 꺾일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어.
근데 어떻게 하냐면… 받을 때 살짝 뒤로 물러나거나, 바로 다른 방향으로 패스를 해. 그러면 충격이 줄어들거든.”

진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서 나는 숨을 죽인 채 걸음을 멈췄다.
진호 선배의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에도 들어왔다.
그건 진석을 위한 조언이었지만, 나에게도 필요했던 말이었다.
세상은 종종 너무 빠르고, 너무 세게 나를 향해 던져진다.
그걸 있는 그대로 다 받으려고 하면, 금방 상처 입고 지쳐버린다.
그럴 땐 뒤로 한 발 물러서거나, 마음속 어딘가로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게 필요하다.

유연한 사고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를 지키는 작은 동작이었다.
딱딱하게 맞서기보다는, 부드럽게 흔들리는 쪽을 택하는 것.
그리고 그 흔들림이 나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지게 만든다는 걸 믿는 일이었다.

회사라는 세상은 여전히 치열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쪽이 더 오래 살아남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농구공처럼 세게 날아오는 감정은, 무조건 다 받지 않아도 괜찮아."